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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후기

천자문 후기. 1. 위진남북조는 짧은 시기에 왕권이 마구 왔다갔다 한 혼란한 시기였으나, 문화는 꽃을 피웠다. 건안칠자 중 조조/조식은 사실상 중국의 시를 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죽림칠현으로 알려진 혜강은 유명한 <성무애락론 - 음악을 들을 때 이치가 감정보다 더욱 중요하다... 뭐 그런 뜻. 나쁜 음악 들으면 사탄의 꾀임에 넘어간다는 아지매들이나 게임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전기를 내리는 기자는, 제발 이런 책 좀 함 보시길.>을 집필했다. 왕희지의 글씨는 입 아프니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도교의 시조로 잘 알려진 오두미교도 삼국시대 한중에서 '장노'의 할아버지가 만들어낸다. 결론은 우리도 시기가 어려울 수록 더욱 덕질에 매진해야 겠다능. 2. 이 글의 처음에 쓸 때에는, 재미없는 곳에 떨어진 친구에게 재밌게 읽을 만한 거리를 주기 위해서였다. 원래 알고 있던 내용이었고, 조금만 생각을 다듬으면 될 것 같아 쉽게 쓸 거라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고,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퇴고가 되지 않은 초안이 완성되었었었었더랬다. 곧 써 줄 것 마냥 큰소리 뻥뻥 쳤구만, 글은 나가지 않아서... 시간 내에 글쓰는 어려움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백수문'에 대한 글을 쓰다가 내 머리에 흰머리가 늘어난 게 함정. . 주흥사 형님, 고생했수. 1-1. 말한 김에 성무애락론에 대해서 한 마디. 혜강은 음악 자체는 형식적인 조화로움에 따른 아름다움 만이 있을 뿐이며, 그 자체에는 애락이 담겨있지 않다고 주장하여, "풍속을 바꾸는데는 음악만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유교의 가르침에 반박한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음악을 들으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음악, 소리라 할 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다른 감동을 주고, 다르게 받아들여 지기 때문에 음악에 목적성 따위야 인정할 것이 못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게 3세기 사람의 주장이다. 서양에서

(4) 알아도 별 도움은 안 되지만, 가끔은 재밌는 것들이 있지. - 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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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字.文. 두둥... 천자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땐,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가마솥엔 누룽지 박박 긁어서"로 외웠던 그 천자문입니다. 왜 "'땅 지' 라고 써 있는데 '따 지'"라고 읽냐고 물어봤다가 그냥 그렇게 읽는 거라고 타박이나 받았던, 이름 석자만 들어도 단원 김홍도의 서당 그림이 생각나는 그 천자문 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서당" 그림이다. 요새 애들이 "천자문"하면 떠올리는 그림과는 사뭇 다를 거다.) 근데 왜 갑자기 천자문이냐고? Posting의 제목을 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천자문 따위, 이 시대에서 알아도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알아두면 재미 있거든요. 1. 백수문 저나 너님들 주위의 아무도! 절대! 이렇게 부르고 있지 않지만, 천자문은 백수문 (白首文), 또는 백두문(白頭文)이라고도 불립니다. 천자문을 지어낸 사람은 남조 시대의 주흥사(절 이름 아니야. 출판사 이름 아니야.)라는 양반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양반이 천자문을 지어낸 후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 아침에 머리가 모두 백발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그러네요. 심지어는 마지막 구를 지을 때에는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잠이 들었는데, 꿈에 귀신이 나타나 "위어조자 언재호야"라고 알려 줘서 간신히 마무리 했다는 얘기도 있구요. 글을 짓는 게 무슨 대수라고, 머리가 하얗게 되고 (원래 반백 쯤 되었는데, 흑발이 모두 빠져서 백발이 되었겠지. 원래 흰머리가 좀 더 강하게 마련이니...) 꿈에 귀신을 볼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를 알기 전에, 남조라는 시대의 양나라와 주흥사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만 알아 보죠. '남조'라는 시대는 후한 이후에 이어지는 '위/진/ 남 북 조 /' 시대에서 보이는 ' 남조 '입니다. 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