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 히로아키 - 무한의 주인 (1)


만화만 소개하는 블로그가 되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하지만, 이번 posting도 소재가 만화입니다. 그것도 또 일본 만화죠. 언젠가는 제가 하고 싶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겠지만서도, 아무튼 요새는 그렇습니다.



1. 무한의 주인




(불사의 몸을 갖는 바람에 무한히 죽어야 하는 무한의 주인, Title role 만지.)


일본 시대극의 대부분이 에도시대인걸 감안하면, 이 만화 역시 진부한 시대 설정입니다. 

만화 안에서의 직접적인 언급이야 없습니다만, 지리적 배경이 에도이고, 공권력의 이름은 막부라고 언급이 되고, 전란 이후의 방황하는 무사들의 모습들이 주된 motive이며, 크리스찬을 고문하던 등장 인물이 나오는 걸 봐서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덕천가강'의 '에도 막부' 가 시간적 배경 되겠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만지씨는 호기롭게 백 명의 관리를 죽인 사내로 등장합니다.
등장 직후, 만지씨는 한 노파에게 혈선충(血仙蟲)을 얻게 되는데, 이 기생충이 상처가 난 몸을 즉시 수리를 해 버리는 바람에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지 않는 한 죽지 않는 이상한 몸이 되어 버립니다.
혈선충을 준 노파는 '일도류'라는 신생 유파에 의해 도장 격파를 당한 무천일류 사범의 딸인 린에게, 도장 격파를 당하는 순간 자신의 눈 앞에서 무참히 살해되고 유린된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만지씨를 고용하도록 하여 두 명의 주인공을 이어주면서 사라지고, 그 후 본격적인 린(그리고 만지)의 복수를 위한 여행을 그린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쓰고 나니 시대 설정 뿐만 아니라 시놉시스까지도 진부하군요. 불사의 몸이라는 걸 빼면 그닥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고요.

만화는 칼싸움으로 시작해서 칼싸움으로 끝납니다. 중간에 총이나 수리검을 쓰는 등장 인물들도 가끔 나오긴 하지만 일단 90%는 칼싸움입니다.

헐. (요새 다섯 살 된 울 아들내미가 이 말을 잘 씁니다. 이걸 말려야 할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진부한 그저 그런 일본 시대 활극이겠군요.




2. The Professional ; Leon


주인공인 만지씨의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지만, 뭐로 보나 30세 이상으로 추정되는 모습입니다. 눈 앞에서 아버지가 단칼에 살해되고, 어머니가 유린당하는 걸 경험한 린은 14세로 나옵니다. 어린 소녀가 싸움 잘하는 장년의 경호원과 커플이 되는 스토리...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




(한 때 저 동그란 선그라스마저 유행을 탔었지.)

영어제목 The Professional, 한국 제목 '레옹'. 12세의 마틸다 (나탈리 포트만 역. 당시 실제나이 12세. 물론 미국 나이로.) 가 중년의 히트맨인 레옹과 엮어지고 이어져서 끝내 사랑하다가 사별하는 스토리의 영화(라는 것을 설명을 해야할 정도로 시대가 흘렀군요...)로 1994년 개봉 당시 공전의 히트를 쳤었드랬죠. 

뤽 베송 감독이야 이 영화 전에도 그랑블루나 니키타 등으로 잘 알려진 감독이었습니다만, (요새는 이 분이 제작한 영화로 테이큰이나 트랜스포터를 얘기해야 더 잘 통할 것 같군요.) 장 르노라는 프랑스 안에서만 잘 나갔던 배우는 이 영화로  일약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열 두살의 어린 나탈리 포트만마져도 잠자던 월드와이드 로리콘들의 우상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영화의 흥행은 말 할 것도 없이 대단했었구요.


영화 레옹에서는 12세 어린년의 발칙한 에로스적 들이댐이 그 나이를 먹도록 한 번 경험이 없는 중늙은이 히트맨에게 천천히 받아 들여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만, 이 만화 안에서 린과 만지의 관계는 자신의 성장을 봐주고 기뻐해 주길 원하는 딸과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아빠, 생사의 길목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는 전우, 서로에게 츤츤데레데레를 시전하는 연인 등등의 좀 더 복잡한 형태로 나옵니다. 
작가의 뛰어난 필치는 인물들의 감정을 표정으로 잘 잡아내어, 이 복잡 다단한 관계를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있구요.

몇 가지 예로, 린이 만지와 헤어져 혼자만의 긴 여행에서 돌아온 후 무사로서의 자신의 성장을 알아달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잠든 만지씨의 입술에 키스하는 장면이나, 일련의 소동이 한바탕 일었다 가라앉은 차분한 밤에 린이 만지씨에게 섹드립을 날려가며 좀 더 가까운 관계를 원했지만 안타깝게도(물론 여기서 안타까운 건 제가 아닙니다. 린 자신이죠...씁.) 만지씨의 남은 한 쪽 팔 (다른 쪽 팔은 싸움 중 잘려서 없어졌죠.) 만 꼭 잡고 자게 되는 모습 등은, "관계"와 "행위"가 모순된 묘한 여운을 전해 줍니다.





(레옹과 마틸다는 누리지 못한 호사. 만지의 다른 팔은 전투 중에 잘려서 없는데 칼은 굳이 두 자루를 놓고 자는 건 좀 어색... )



이제 쬐끔은 덜 진부하려나요? 아직은 좀 부족하죠. 좀 더 가보겠습니다.






3. Kill Bill




(느껴지는가,  저 늠름한 팜므파탈의 기상이.)

쿠엔틴 타란티노 자신이 재패니매이션의 광팬이니, 킬빌이라는 영화와 일본 만화의 연관성을 따지는 건,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은 남자 혹은 여자이다 정도의 명제를 증명하는 것과 비슷하죠.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킬빌이라는 영화에서 우마 서먼이 극강의 여자 킬러로 등장하는 것에 대한 내용인데요...

킬빌에서 주인공 아줌마는 뱃속의 아기를 잃은 아픔 뿌라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결혼식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슬픔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신의 결혼식장을 파토낸 예전의 동료들과 보스를 죽이기로 결행합니다.
즉, 우마 서먼을 움직인 것은 모성애와 증오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는 미워하는 두 모순된 마음은 우마 서먼이 (그녀가 그녀의 몸을 묶어두었던 전신불수를 발가락하나부터 걷어낸 뒤에) 노란 옷을 입고 긴 칼을 들고, 미국과 일본과 또 미국을 오가며 사람들을 죽이고, 또 죽이고, 또또 죽이게 만듭니다. 이전에도 킬러로서 극강이었던 아줌마에게 증오와 사랑이라는 부스터를 달아주니, 끝내는 자신을 킬러로 키워 준 보스마져 뛰어넘고 해치워 버리죠.




여기... 또 다른 비슷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어린 아이일 때에도, 들개때의 습격 따위야 피 한방울 묻히지도 않고 제압하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유곽(우리말로 기생집... 정도 되겠죠.)이라는 절망적인 환경, 그러한 환경을 물려준 가족, 그러한 가족의 비참한 말로로 이어지는 3단 콤보로 인한 끝없는 절망 그리고 증오와 함께, 일도류의 수령인 아노츠 카게이사와의 이뤄질 듯 말 듯 한 사랑을 안겨받은 이 소녀는 자신을 옥죄고 있던 마음의 고치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극강의 여전사로 다시 태어나 버립니다.

바로 이 분이죠.




(한 손엔 샤미센, 다른 손엔 삼절창. 게이샤 출신인 그녀는 악기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삼절창으로 세상을 지배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저 세상을 선물해 줍니다.)



오토노타치바나 마키에. 



그녀의 연인이자 일도류의 수령인 아노츠조차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녀는, 이 만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강한 무사입니다. 극강의 무공을 지닌 이 팜므파탈에겐 결핵따윈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주는 악세사리일 뿐이죠.




(한 포스트에 두 개의 짤을 올리는 것으로 그녀에 대한 경외심을 갈음합니다. 그녀가 얼굴이 잘 드러내지 않는 탓에 좋은 image를 찾기 참 어려웠습니다.)


이 여전사의 마지막을 얘기하는 것은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될 테니 일단 참아 보겠습니다만...
타이틀롤을 제외한 꽤 비중있는 인물로 등장하는 팜므 파탈...





어쨌든 이제 슬슬 재밌어지려고 하고있군요... 하지만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이 만화의 재밌는 부분이 말이죠...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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