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 인형 (Voodoo Doll)





Voodoo Doll



블리자드에서 만든 카드 게임 하스스톤에서의 '부두 인형'. 
하스스톤은 로아/브원삼디 등 부두교의 개념을 게임 내에 성공적으로 차용하고 있고, 부두인형도 동일한 사례이다.



  Voodoo Doll


당신이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나 게임에서 한 번은 들었음직한 '부두 인형'이란 말은, 곰탕이나 붕어빵, 핫도그에 곰과 붕어, 개가 없는 것처럼 부두교에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결코 귀여울 수 없는 조악한 모양의 인형에 대상이 되는 사람의 손톱이나 머리카락 등의 유실물을 넣어 만든 후 바늘로 찌르면 대상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는 것으로 알려진 이 인형은 그 유래를 부두교 (루이지애나든  본고장인 하이티든)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주술사가 대상의 이미지나 모티브를 다른 사물에 부여한 후 기도를 하거나, 불로 태우거나, 화살을 쏴 저주를 내리는 주술적인 행위 혹은 그 대상물은 동아시아/유럽/아프리카 많은 나라의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정작 '부두교'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미국의 뉴올리언즈 등지에서는 부두인형과 함께 흰 바늘(= 행운), 검은 바늘(= 저주)을 동봉하여 판다고도 하고, 사르코지 대통령을 본 딴 부두인형의 판매가 법원의 판단을 받는 일이 있으면서 유명세를 탄 적도 있는 이 부두 인형은 1930~40년대의 미국의 소설과 영화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8/oct/29/sarkozy-voodoo-france

사르코지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 넣고 판매된 부두 인형. 사르코지는 법원에 판매 불가를 신청했고, 법원은 판매 불가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판매 시 경고 문구를 삽입할 것을 명령했다. 원더키드가 날아다닐 것 같았던 21세기에도 이런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마치 오리엔탈리즘의 다른 버전처럼, 서양의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무섭고 사악한 무엇인가는 악한 부두교에서 왔을 것으로 간단히 연결해 버리는 작업들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개인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데, 굳이 부두교에서 부두 인형의 모티브 같을 것을 찾아 보자면 부두교 사제들은 해코지를 하고 싶은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소유하면 그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해를 줄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정도다. 

다만 이 때에도 lwa(로아, 정령이라고 할 수도, 수호 성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부두교 만의 재밌는 개념에 대해 설명하면 길어지니 일단 넘어가 보자.)에게 기도를 하기 위한 매개물이지, 인형 같은 대상물이 등장하거나 머리카락과 손톱을 집어 넣고 바늘로 찌르는 행위 혹은 제위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부두교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는 주술사 같은 사람을 bokor라고 하는데, 주로 부두교의 정령 같은 존재인 로아에게 저주를 부탁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런 저주는 부두교 사제인 oungan(여성 사제) 나 mambo(남성 사제)에 의해 제거되기도 하는데 제거되는 의식은 마사지나 목욕의 형태이다. (그러니 당신에게 왠지 모를 불운이 자주 찾아온다고 생각된다면 일단 좀 씻....)


한 마디로, 잘 모르는 서양 혹은 미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영화나 소설같은 작품에서 소화해 낸 결과물이 부두 인형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루이지애나 부두교 사제들이 부두 인형은 부두교와 관련이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Zombie


이 부두인형과 비슷하게 같은 부두교에서 유래되었으나,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전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 바로 좀비인데, 그래도 부두 인형은 아예 없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나 좀비는 그 말 만큼은 부두교에서 나온 것이니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하다. 

흔히 영화든 소설이든 게임이든 일단 Zombie라고 하면 죽었지만 죽지 않은 '언데드'가 다른 사람을 깨물려고 돌아다니는 것이 언뜻 떠오르게 되지만,  하이티안 부두교에서는 이와 달리 살아있는 사람에게 약을 먹이거나 몸에 발라서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고 영혼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던가 혹은 죽은 사람을 되살려서 노예처럼 부리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좀비가 된 사람은 영혼 소유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수 밖에 없으나 감정과 고통을 그대로 느끼기 때문에 주술사가 좀비에게 주는 극한의 고통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점이다. 

너님들이 다른 매체에서 본 것처럼 좀비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기나 뇌를 먹고자하는 욕망 밖에 남지 않아서 이를 위해 밤낮으로 길을 헤매고 다닌다거나,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것도 뭐 나름 공포스럽긴 하지만, 부두교에서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고 차라리 드라큘라 / 뱀파이어 등등의 다른 문화의 공포 밈이 좀비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채로 소화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세계화로 인한 문화의 섞임과 컨텐츠를 판매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좀비에게 쿵푸를 가르치기도 하고, 신체 특정 부위만 탐하여 먹는 편식쟁이로 만들기도 하며, 운 좋게 먹은 부위가 똑똑한 사람의 뇌라면 똑똑한 좀비로 진화되는 헌터X헌터의 개미형 좀비를 등장시키기도, 심지어 거의 지구 정 반대편 조선 땅에 창궐시킨 후 그것들을 퇴치하는 왕을 주제로한 드라마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월드 오드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실바나스야 말로 좀비의 개념을 제대로 얹은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정의롭고 매력적인 태양샘 순찰대 사령관 실바나스는 악마에게 영혼을 맡겨버린 아서스에게 죽음을 맞으나. 이 죽음의 기사는 자신과 자신의 군대를 괴롭혔던 실바나스를 다시 살려내어 자신에게 절대 복종하게 만드는데 그녀의 기억과 고통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유지시키는 복수를 한다. 
참고로 블리자드에서 실바나스에게 덮어 씌운 '밴시'라는 개념은 켈트신화에 나오는 죽을 사람의 옷을 빨래질 하거나 그 사람이 죽을 것을 예언하듯 우는(cry) 요정에서 차용한 것이다. 





  Haiti


좀비와 부두인형을 이야기 하면서 이것들의 고향 같은 하이티 얘기를 빼 놓을 수 없겠으나, 오로지 재미난 것만 다루는 이 블로그에서는 다루기 미안할 정도로 하이티는 예나 지금이나 사정이 좋지 못하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바베큐라는 재미난 이름의 갱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길게 좀 떠들어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갱들 간의 전쟁과 지역적인 지배가 한 나라의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지금은 그 이야기를 뉴스 사이트에 맡겨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흔히들 알고 있는 하이티에 대한 내용들은 대지진 이후의 비극과 그로부터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좌절 등등 비교적 최근의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섬나라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면 일단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 이 후, 노예 이주민에 의해 독립했던 최초의 국가 산토 도밍고 (스페인식 이름, 프랑스의 지배가 이뤄진 서쪽을 부르는 말로는 생 도밍그, 지금은 같은 섬 안에서 하이티와 국경을 인접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이름으로 남았다.)가 지금의 하이티이고, 이 국가가 무려 slave-free nation이었다는 것부터는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전의 콜럼버스의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자행한 대학살을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 대학살 덕에 살아 남은 원주민은 거의 없고 이 후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들의 후손들이 하이티의 국민이 되어버린 탓에 콜럼버스와 대학살의 이야기는 히스파니아 섬의 역사이지 하이티라는 나라의 역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 후 하이티에서 벌어진 일들은 2010년의 대지진을 포함하여 나라가 망해가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그 영광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이 이 나라의 유일한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이 후는 한 때 나마 프랑스를, 그것도 무려 나폴레옹을 물리친 (하이티에 있던 열사병이 외국의 군대를 물리쳤다고 봐도 무방하겠으나 일단 넘어가자.) 자존감으로 열강의 반열에 올라가고 싶었으나 빈곤과 저개발을 극복하지 못했던 독립국은 부패와 외세의 간섭과 자연 재해로 모든 사람이 불쌍해하는 나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전 세계에 강한 영향을 끼치는 미국에 매우 근접한 지리적인 영향탓에 하이티에서 나온 것들이 유명세를 탄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게 바로 부두 인형과 좀비이다. 그 외에도 선역으로 시작했다가 악역으로 갈아타고 끝내는 미친 변태로 생을 마감했다가 부관 참시를 당하는 독재자 프랑소와 뒤발리에와 그에 못지 않게, 오히려 한 차원 높혀서 나라 전체를 말아 쳐 드신 그에 아들 장 끌로드 뒤발리에도 심심치 않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패러디 되듯 파파독과 베베독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전설적인 하이티안 독재자 파파독(프랑소와 뒤발리에, 사진 왼쪽)와 에미넴과 랩배틀 뛰고 있는 파파독 (훗날 그는 영화 노토리어스에서 투팍 샤커, 엔드 게임에서는 '온 유어 레프트' 팔콘이 된다.) 







  Black Panther 
(이 후의 내용은 영화 Wakanda Forever의 spoiler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뒤로 가기를 누르기 귀찮으니 끝까지 읽고 저를 원망하시면 됩니다.)



최근 극장에서 개봉한 MCU Black Panther의 두번째 영화 Wakanda Forever는 비브라늄이라는 광물을 (어쩌다 보니) 나눠 가진 두 개의 문명이 충돌하는 영화이다. 


누가 봐도 마야 문명에서 모티브를 퍼 온 것으로 보이는 바다 민족의 초고도 문명이 아프리카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초고도 문명과 한 판 붙어 결판을 낸다는 스토리인데, '초고도 문명'들이 나라를 걸고 맞붙는 미래 전쟁에 칼/창이 난무하고, 전쟁의 승패를 국왕의 일기토로 결정짓는 것도 아프리카와 근대 이전 아메리카의 문명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아 우습긴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젊은 나이에 서거한 선왕이 남긴 아들이 "하이티안 네임은 투생이지만 난 사실 티찰라야"로 커밍 아웃하는 건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다. 


MCU는 나무를 숲에 숨기듯 나라를 통치하는 위험한 일로부터 흑인 아이를 숨길 곳으로 아프리카로부터 멀리 떨어진 아프리칸 커뮤니티에 하나로 하이티를 선택하고, 또 선택한 하이티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독립 영웅 Toussaint Louverture의 이름을 갖다 썼을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우리 나라로 치자면 어린 영웅의 이름을 '창호'나 '봉길이' 혹은 '구'나, '관순이'로 붙이고 얘가 사실 수퍼맨의 자식이야라고 한 셈이다.) 하이티는 그 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칸과 그나마 외형적으로 닮은 것을 빼면 문화도 많이 다를 뿐만 아니라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 집계된 납치된 어린이 수가 1100명이 넘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부실한 식음수 상황에 엎친데 덥친 격으로 퍼진 콜레라로 2022년 10월부터 집계된 확진 환자가 600명이 넘고 의심환자는 6500명이 넘는데 그 중에 136명은 사망했고, 부족한 의료시설 탓에 정확한 집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문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애를 이런 곳에 숨긴다는 설정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냥 거기 와칸다에 있지 그랬어...

 

영화 내에서 충돌한 두 문명 모두 실제로는 잔인하게 침탈 당한 제국주의 시대의 희생양인 것도 아이러니 한데 굳이 여기에 또 다른 슬픈 역사인 하이티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과연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뭐 기왕 국민적인 영웅을 끌어다 썼으니 좀비나 부두 인형처럼 '소비'만 되지 않도록 앞으로 잘 부탁하는 마음 뿐이다. 이 나라는 누가 더 말하지 않아도 아픔이 많은 나라니 말이다.








주 : Haiti는 Ay-ti를 프랑스어로 표기한 것이며 한국식 표준어로는 '아이티'가 맞고, '하이티'는 Haiti의 영어 독음입니다만, 글에서는 계속 일관되게 하이티로 표기했습니다. 이는 좀비 (프랑스어로는 Zombi, 크레올어로는 Zonbi)와 부두 (크레올어 Vudou)에도 동일하게 적용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사무라 히로아키 - 무한의 주인 (2)

사무라 히로아키 - 무한의 주인 (1)

위스키 글라스 Whisky G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