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알아도 별 도움은 안 되지만, 가끔은 재밌는 것이 있지. - 말러 해머 (Mahler Hammer)

 알아도 별 도움은 안 되지만, 가끔은 재밌는 것이 있지. - Mahler Hammer



(Gustav Mahler 1860 - 1911, 앉은 자세가 불편해 보인다면 니 기분 탓 만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가요 프로그램 기준 3분 30초, 대개의 경우 4~5분 정도의 플레잉 타임을 보이는 요즘의 노래들도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는 다 듣는 경우가 점점 적어지고 있는데, 1시간이 넘는 교향곡의 전체를 다 듣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에 가깝습니다. 음악이 10초~15초 정도의 짧은 클립으로도 많이 소비되는 요즘, 한 시간에 가까운 교향곡 전체를 듣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신에게 시간이 많다면(!) 보통의 경우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주욱 듣다 보면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는 듯한 교향곡 전체를 들어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빠름-느림-빠름 (보통은 18세기의 교향곡이 이렇구요) 혹은 빠름-느림-빠름-빠름 (억지로 박자 개념을 맞추다 보니 이렇게 쓰긴 했지만, '경쾌한 오프닝 - 셋업 - 춤곡 - 장대한 마무리' 정도가 더 맞을 것 같네요.)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지루할 틈 없이 재밌는 스토리 등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네, 반은 농담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큰 맘 먹고 산 두꺼운 양장의 책이 몇 년째 책상 위에서 모니터만 받치고 있거나 출출한 밤에 뜨거운 라면 냄비 받침으로 더 자주 활용되듯, 교향곡 역시 다른 활용이 언제나 가능해서, 방 밖의 엄마에게는 음악 틀고 공부하는 척하면서 이어폰 끼고 게임하고 싶을 때 안정적인 1시간 정도의 시간을 확보하는데는 아주 그만 입니다. (당연하지만, 부모님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한다는 사전적인 체험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예기치 않게 방문이 열릴 때 빠르게 alt+tab 또는 alt+F4를 누를 수 있는 스킬은 오롯이 당신 몫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구스타프 말러라는 양반이 작곡한 교향곡들은 이 외에도 아주 요긴하게 쓸 모 있을 때가 있는데, 바로 추리 소설을 읽을 때 BGM으로 써 먹는 것입니다.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브라스나 퍼쿠션 세션이 많이 배치되어 추리소설의 긴장감을 올려주기엔 제격일 뿐만 아니라, 추리 소설의 일반적인 전개 (주인공 혹은 탐정의 등장 - 배경 설명 - 사건 발생 - 미궁에 빠진 채 헤매기 - 짜잔 퀴즈 풀이)와 말러의 교향곡 전개가 이상하게도 들어맞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Mahler, Gustav 


19세기 말 / 20세기 초, 당대의 최고 지휘자 중 한 명이자,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의 가교가 된 후기 낭만파 최고의 작곡자 중 한 명인 Gustav Mahler의 곡들을 추리소설 읽을 때 BGM으로나 쓴다는 말은 말러리안으로 불리는 그의 팬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닙니다. 그가 그의 교향곡에서 (어찌보면 과도하게) 많은 브라스나 퍼쿠션을 쓴 이유가 21세기 동양의 아저씨가 나른한 오후에 추리 소설 읽을 때 긴장감을 얻기 쉽도록 하기 위함은 당연히 아니니까요.


스스로 자신에게 수많은 철학적인 질문을 해대고, 그에 맞는 답변을 끝없이 찾았던 말러는 (말년에 말러는 프로이트 - 당신이 아는 그 프로이트 맞습니다. - 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았는데, 프로이트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의 불안이 12명의 형제자매가 6명만 살아남았던 그의 유복할 수 없었던 유년 시절에 뿌리를 둔다고 진단했죠.)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의 노트마다 고민과 해답을 심어 놓습니다. 기존의 교향곡을 이루는 포맷만으로는 이러한 고민들을 담을 수 없다보니 당시엔 파격적인 일탈(?)들이 들어오는데요, 이 고민 많던 아저씨가 교향곡에서 주문한 것들을 살펴 보자면, 


- 1번 거인 교향곡에서는 4악장의 마지막에 전체 호른 주자들이 '갑자기' 일어서서 연주합니다. (초연 이후에 호른 주자가 적다고 더 넣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 2번 부활 교향곡에서는 전통적인 4악장이 아닌 5악장으로 구성하고 4악장의 마지막에는 독창을, 5악장의 마지막에는 알토와 소프라노의 합창을 집어 넣습니다. 대규모로 구성된 퍼쿠션 세션 중 일부는 무대 밖 멀리 (악보에 쓰여진 대로 적었습니다.) 배치합니다.

- 3번 교향곡 (곡 이름 붙이기를 장고 끝에 포기했는데, 고민 되던 이름 중 하나가 '행복한 과학';) 에서는 악장을 '그 까짓 것' 6악장으로 늘리고 소년 합창과 여성 합창을 집어 놓고는 작은 북 그룹을 무대 중 적당히 "높은 위치에" 배치합니다.

- 6번 교향곡 Tragic 은 카우벨 (cow bell - 소 방울)과 해머 가 포함된 15종의 타악기 세트가 쓰이고, 그 중 카우벨은 1&4 악장에서는 무대 밖에서, 3악장에서는 무대 안에서 사용됩니다. 

- 7번 (밤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전체 교향곡에 대한 이름은 아닐 겁니다, 아마.) 교향곡에서는 악기 편성은 둘째 치고, 1악장부터 조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대담한 전개가 나옵니다.

- 8번 천인 교향곡에서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합쳐서 말 그대로 천(1000)명이 무대에 올라 옵니다;



(1916년 3월,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에 의해 진행된 미국 초연, 정확히는 1068명이 올라왔다.)


말러의 교향곡 자체도 많은 곳에 사용이 되었고 (교향곡 3번은 은하영웅전설 BGM으로 사용되어 당신도 모르게 너님에게 친숙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쓰였던 교향곡 5번은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장례식에도 연주되었고, 케네디 대통령 본인의 장송곡으로 번스타인이 교향곡 2번 부활을 무대 위에 올렸더랬죠.) 말러의 영향을 받은 무수한 후대의 클래식 / 비클래식 음악가들이 많은 음악을 세상에 내 놓은 탓에, 지금의 우리들 귀에는 말러의 교향곡이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 평론가들이 보기엔 저 위의 짓거리들이 정말 가당치도 않은 것들이어서 발표되는 교향곡들의 초연 이후엔 정말 사력을 다해 비판을 하곤 했습니다.


(1907년 음악 평론지에 실린 카툰, 작은 글씨라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My God, I've forgotten the motor horn! Now I shall have to write another symphony." 세상 다양한 타악기를 교향곡에 집어 넣은 말러를 비꼬고 있다.)


자신을 비난하던 평론가들에게 말러는 요렇게 간단히 답했습니다.


“My music is lived!” he exclaimed in another letter. “What attitude should those people take who do not ‘live,’ who feel no breath of the rushing gale of our great epoch?”

"내 음악은 살아있습니다! 살아있지도 않고, 시대의 거센 돌풍을 느끼지도 않는 저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Mahler, Hammer 


그가 어떤 고민을 했던 간에, 저같은 음알못에게는 추리 소설 BGM의 역할만 하던 말러의 교향곡 중에는 읽던 추리 소설 따위는 덮게 되는, 눈이 번쩍 뜨이는 부분이 나옵니다.


(어우 쒸...뭐... 뭐야...)


6번 Tragic 교향곡 4 악장에서 등장하는, Hammer 샷 부분입니다. 

위의 GIF가 별로 감흥이 없으시면, 아래는 어떤가요.





(우쒸...뭐야....)


"브링 미 타노스"부터 "내가 봤는디, 사쿠라였는디."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 많은 패러디를 양산해 내는 장면이고, 심지어 당대에는 말러가 Pseudo-instrument로 교향곡/클래식 음악을 트롤한다는 평까지 나왔던 장면인데요, 

아무리 봐도 악기라고 볼 수 없고, 잘못 했다간 뭐 하나 작살 낼 것처럼 떨어지는 저 해머 역시 말러가 기존의 악기로는 나타낼 수 없는 소리를 찾아 헤맨 결과 입니다. 


Hammer of Fate라 불리는 저 망치는 최초 기획 시 5번(!)을 때리는 것으로 기획 되었는데, 금속성이 아니면서도 둔탁한 소리를 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초연 이후엔 3번 때리는 것으로 줄어들었고, 결국엔 2번을 치는 것으로 되었는데, 지금은 연주하는 교향악단이나 지휘자의 재량에 맞춰 하는 것 같습니다. 

저 망치의 사이즈나 울림통의 사이즈도 따로 정해진 것은 없어서 교향악단에서 알아서 제작하는 것이고요. 말러의 부인이었던 Alma의 말로는 영웅이 3번의 fatal blow를 맞고, 마지막 샷에는 '큰 나무가 쓰러지듯이' 쓰러지는 것을 연상하게 했다고 하는데, 연주 중 저 망치가 내려치는 것을 보면, 과연 그렇습니다; 

퍼쿠션 주자 중 한 명이 조용히 해머로 걸어와서, '쾅'하고 내려치고는 유유히 자신의 자리로 가는 모습은 왠지 모를 쾌감을 주기도 하는데, 저처럼 실제 연주를 들을 기회가 없어 유툽으로 영상을 찾아보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절대 단 한 번만 보고는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죠.








'알아도 별 도움은 안 되지만, 가끔은 재밌는 것이 있지' 시리즈는 마지막의 주제를 뽑아내기 위해 빙빙 돌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주된 포맷으로 삼고 있는데, 이번엔 말러와 말러 해머만으로 이야기를 하니 너무 직설적이어서 좀 어색하긴 합니다. 

단지 지난번 교고쿠편에서 지나치게 추리소설 전체로 변죽을 울리다가 정작 교고쿠 나츠히코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적이 있어서; 조심스러운 점이 있긴 했습니다. 최근엔 더 이상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이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지 않다보니 제 관심도 같이 식은 듯한 느낌입니다만, 그 편도 어떻게든 잘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P.S. 1, 노다메 칸타빌레 중 S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 악기를 돌리거나 위로 치켜 올리는 장면은 말러의 거인 교향곡에서 모든 호른 주자들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연주 하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만화의 작가가 말러를 오마쥬 했을 지는 귀찮아서 굳이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말러의 1번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이나 S 오케스트라의 연출된 부분 모두 매우 장쾌하다는 겁니다. 혹시 아직 안 들어보신 분이 계시다면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P.S. 2, 이번 글은 아래의 website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https://www.spartanburgphilharmonic.org/program-notes/2021/gustav-mahler

https://www.udiscovermusic.com/classical-features/best-mahler-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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