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이 글은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수도원 입장 후 관람 시간 15분 동안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아들들에게 말해 줄 요량으로 작성했던 스크립트를 편집한 것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수도원은 이 걸작을 볼 수 있는 관람 시간을 15분으로 제한을 걸어 두었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빠르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전달하려면 미리 스크립트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여행 후엔 작성했던 스크립트를 그대로 두기에 아까우니 살을 좀 더 붙여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냥 이 멋진 그림을 쭉 보게 놔두고 궁금한 내용에 대해 나중에 설명해 주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만, 당시의 저는 그렇게 여유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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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아니죠. 네.
입장과 퇴장 시간을 제외한 13~4분 정도 분량으로 스크립트를 준비해야 했어서 몇 가지 포인트를 잡아야 했습니다.
* 등장인물 : 그림에 여러 명의 사람이 등장하니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필요한 건 당연한데, 그림의 주인공이 무려 Jesus. 교회 근처도 안 가보고 살아온 어린 친구들에게 '기독교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 작법 : 액자에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벽에 그려진 그림이니, 그 시절 벽에 그림을 그렸던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지금의 모습과 같이 훼손된 이유도 설명할 수도 있으니까요.
* 작가 : 누가 그렸는지도 알려줘야 하는데, 작가가 무려, 레오나르도님 어서 오시고요. 설명할 게 많아지는군요.
* 원근법과 소실점 : 이 그림의 핵심이 '소실점을 통해 인물 드러내기'인데, 그렇다면 소실점이 그림에 도입되었던 르네상스부터 설명을 해야겠군요.
5. 일화들 : 이 그림을 둘러싼 음모론들 혹은 음모까진 아니더라도 재미난 이야기도 참 많으니 주의 환기를 위해 간단히 얘기를 한다고 해도 간단히 15분은 걸리겠네요.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덧붙인 내용이 있는 것을 미리 써 둡니다. 더불어 기독교와 르네상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설명은 여행 전 며칠 동안 미리 아들들 잠들 녘에 머리맡에서 강제로 주입했던 것도 같이 적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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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기 그림 안에 있는 사람들은 꼭 그렇지는 않았어. 가운데 앉아 계신 분이 예수님인데, 자기가 곧 잡혀가서 죽을 것을 알고 계신 상황에서 그 옆에 있는 열 두 제자들에게 "이 빵은 내 몸이고, 이 포도주는 내 피이니 먹고 마시면서 앞으로도 나를 기억하는 것으로 약속을 하자"라고 하시는 장면이야. 느닷없는 뜬금포에 좀 섬뜩하기도 한 말씀이라 열 두 제자라는 사람들은 일단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모습이지. 성경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마지막 식사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작가가 이 중요한 순간을 이 성당의 식당 벽에 그림을 그린거야.
- 그림을 한 번 볼까? 딱 봐도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주인공 같지? 맞아 그 분이 예수님이라는 분이야. 그런데 어떻게 한 눈에 봐도 주인공 같이 보일까? 가운데 있는 사람 뒤의 환한 배경이 뭔가 눈에 들어오고 그 옆의 네모난 문 같은 것들이 앞으로 오면서 커지는 거처럼 보이지. 지금 우리가 저 그림에 실제로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아래 그림처럼 저 문들의 위를 연결하는 선을 그려서 주욱 늘여본다고 생각하면 그 선은 예수님 머리 뒤에 있는 환한 창 밖 배경과 닿게 돼고, 예수님이 가운데에 '짠'하고 계신 것처럼 보이게 돼. 그림에서 표현하는 원근법, 소실점 이라는 건 여행 출발하기 전에 얘기했으니 기억나지? 보통의 원근법은 그림을 실제처럼 보이도록 하는 기법인데, 레오나르도님은 그 원근법과 소실점을 이용해서 주인공을 진짜 주인공으로 만들었어.
(너는 지금 머릿속에서 문들을 연결하는 선을 그리고 있다.)
이 시대의 다른 그림들에서는 매우 중요한 성인이나 신과 같은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머리 뒤에 빛이 나오는 것 같은 좀 촌스럽지만 직접적인 연출을 하기도 했는데, 이 그림에서는 그런 건 빼버리고 창 밖의 밝은 부분과 인물들의 배치만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주인공처럼 띄워주는 효과는 다 살렸어.
- 근데 이 그림을 보면, 사람들이 대단하다라고 하는 것치고는 조금 낡아보이지? 이게 그 당시에 사람들이 그렸던 벽화를 그리는 기술과는 조금 다른 걸 써서 그래. 템페라라는 기법인데 물감을 계란 노른자의 끈적임을 이용해서 벽에다가 붙이는 방법이야. 돈 들여 여기까지 왔으니 기억에 남는 단어를 몇 개는 남겨야 하는데, 충분히 그 후보가 될 만한 단어야. 기억하자, 템페라. 그림이 그려진 당시에는 '프레스코'라는 기법으로 다들 벽화를 그렸는데, 프레스코는 '프레시'(Frecso가 Fresh라는 뜻이야)한 석회에 물에만 갠 물감을 석회가 굳기 직전에 입히거나 섞어가며 그리는 방법이야. 석회가 굳으면서 물감을 확 잡아버려서 한 번 그리면 오래가긴 하는데 대신 석회가 마르기 전에 빠르게 그려야해서 아주 자세한 표현은 좀 어려운 편이거든. 레오나르도님은 그게 싫었는지 달걀 노른자로 물감을 벽에 붙이는 방법을 쓰셨는데, 노른자가 벽에 붙어 있어 봤자 얼마나 가겠어? 그 덕에 후세 사람들은 계속 그림이 낡아지면 계속 복원하면서 돈을 벌 수 있지. 천 년을 내다보신 레오나르도님 당신은 도대체. 참고로 프레스코라는 기법은 우리나라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도 나와. 우리 조상님들은 벽에 석회를 바르던 이탈리아 형님들과는 좀 다르게 그냥 석회암이나 화강암 돌벽을 그냥 파면서 그려버렸지.
-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림 안에서 재밌는 내용을 하나만 살펴보자. 그림의 가운데는 예수님이라고 했고 그 왼 편에 있는 3명의 사람이 보이지?
예수님 바로 옆, 뭔가 좀 순하게 보이는 사람은 요한이라는 제자야. 다른 예수님과 열 두 제자가 나오는 그림에서도 늘 가장 어린 사람으로 그려지는 분인데 여기선 왠지 긴 머리에 수염이 없다보니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네. 그래서 그런 지 다빈치 코드라는 유명한 소설에서는 사실 요한이 아니고 마리아네 어쩌네 하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지. 근데 응 아니야. 남자야.
(뭘 봐? 스승 팔아먹은 사람 처음 봐?)
레오나르도가 이 그림을 그리기 10년 전에 그렸졌던 페루기노의 위 그림을 볼까? 원근법 그런 거 없고, 요한은 애기라 잠들었고, 베드로는 한 손에 칼을 꽉 쥐고 '저 배신자를 확'하는 결의 찬 표정으로 건너편의 사람을 보고 있고,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은 모두 후광을 그려줬는데, 후광도 없이 아예 건너편에 배치하고 대담하게 혹은 약간은 안타깝게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흑발의 가롯 유다를 볼 수 있지.
어때? 그림 보는 거 재밌지? ....
음...그래. 다음 장소로 가자. 다음은 밀라노 대 성당이야. 점심을 먹고 좀 걸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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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평소 그림 따위를 전혀 접하지 않는 아들들이 이 유명한 그림을 처음 보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수도원을 나오게 되는 일은 피하고 싶었고, 이 놈들이 훨씬 더 어렸을 때, 그리고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넓었던 루브르에서 기어코 '수태고지'와 '피에타'를 찾아내어 그림 앞에 앉혀두고 설명해 주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있어서,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아들들이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최소한 작품의 이름만은.) 이번에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결론은 음... 둘 다 청소년이 된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어서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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