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nn Gould
2010.9.17
어쩌다 보니 달력과 날씨가 모두 가을입니다. 저녁과 아침엔 제법 선선해져서 어떤 때는 싸늘할 때도 있고요…
고즈넉한 가을 밤, 풀벌레 울음소리에 뒤척이다, 오늘 옆 자리 애가 입고 온 쥐마켓스러운 자켓이 왠지 촌스러워 보이다가 갑자기 나도 그게 갖고 싶어지는 뷁스런 생각이나, 백만년 전에 헤어진 여친은 지금 뭐 할까 등등의 온갖 잡생각이 가득 들어서 잠자기 아쉬울 때, 누운 자리 박차고 컴 켜서 쥐마켓이나, 헤어진 여친 싸이를 뒤지는 것보다 좀 더 있어 보이게 밤을 넘기는 방법은…
< 헤어진 애인 싸이 뒤지려고 산 컴이 아니라구…>
골드버그 변주곡 (Goldberg Variation)을 듣는 것입니다. 흠흠… 물론 반은 농담입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지가 젤 좋아하는 노래”로 꼽아서 좀 더 유명해지기도 한 그 곡이죠.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러시아의 대사 카이저링 백작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골드버그에게 자장가를 작곡해서 연주해 달라고 합니다.
당시 무려 14세였던 골드버그는 미취학 아동 노동 착취를 거부하고 바흐(생각하시는 그 요한 세바스찬 바흐 맞습니다.)에게 의뢰를 하는데, 일전에 자신의 뒤를 봐준 적이 있던 카이저링 백작과의 관계 때문에 바흐는 울며 겨자 먹기로 30여 개의 변주곡 (정확히는 1개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을 작곡합니다. 이 변주곡을 듣고 과연 카이저링이 잠에 들 수 있었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바흐가 붙힌 원제가 <2단 건반이 딸린 클라비어 쳄발로를 위한 갖가지 변주>, 즉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만든 곡이기 때문이죠.
(위의 이야기는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큰 코 다치실 수 있습니다. Johann Nikolaus Forkel이 쓴 바흐의 전기에 나오는 내용이긴 한데, 후대 학자들은 거의 뻥으로 취급하고 있거든요…)
후에 골드버그 변주곡은 슈바이처 박사로부터(생각하시는 슈바이처 박사 맞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시긴 전부터 뛰어난 피아니스트 할배였죠.) 고전 음악 중 최고의 현대감각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는데, 이 골드버크 변주곡에 완벽한 해석(?)을 더한 사람이 Glenn Gould 입니다. (참 멀리 돌아서 드디어 제목이 나왔습니다. ㅡ.ㅡ)
피아노계의 기인, 좀 억지스럽게 갖다 붙이자면 음악계의 이외수인 Glenn Gould는 자신의 곡을 절대 “리바이벌” (re-recording이 더 정확한 말입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초연했을 1955년과 자신의 말년인 1980년대를 스스로 비교할 때, 피아노 기법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녹음할 것을 결정하는데, 그 때 선택한 곡이 골드버그 변주곡입니다. (처음 링크해 드린 동영상이 사망 몇 해 전에 녹음한 골드버그 변주곡 입니다.)
1932년에 토론토에서 태어나서 딱 50년 사시고 돌아가신 이 피아노의 마왕은 대인기피증 등을 가진 사회 부적합자였습니다만, 그의 연주만큼은 훌륭하다는 찬사가 무색할 만큼 뛰어납니다. 땀으로 범벅된 긴 머리가 건반에 묻힐 정도로 허리를 구부리고, (중년 이후엔 머리가 많이 빠지신 탓인지 베레모를 애용하시죠) 긴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모습은 그냥 피아노 대마왕으로 보입니다.
<젊었을 때는 나름 꽃남이었… 하체만 보이는 지휘자는 번스타인임.>
(링크를 주소창에 넣고 enter 하시면 연주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아저씨가 연주하면서 입으로 음을 따라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데 (위 링크의 동영상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연주자에게 방해를 줄 수 있고, 특히 녹음 시에는 연주음 외에 잡음이 들어가므로 금기시 되는 사항입니다만 마왕에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콘서트에서 허밍으로 “자기 입 반주”를 따로 넣다 보니 글렌 굴드의 레코드에서 허밍음은 그냥 자연스러운 추임새처럼 여겨지고, 또 없으면 허전하기까지 합니다.
글렌 굴드에 대한 재밌는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하기로 하더라도, 서늘한 밤에 피아노곡으로 도망가는 잠을 붙들어 두시는 것은 어떠실지, 살짝 권해 드립니다. (30여 개의 변주곡을 모두 들으실 분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걔 중엔 오던 잠도 쫓는 것도 있으니 주의 하셔야…^^ 가급적이면 아리아 하나로 만족하시는 것도…ㅎ)
P.S 처음 링크해 드린 변주곡도 좋습니다만, 여건이 허락되신다면 캬라얀 혹은 번스타인과의 협연을 들어보시면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실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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