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플레이리스트


세상이 어지럽고 원치않는 빠름을 강요 당할 때에는, 뜨는 해와 지는 해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한적한 곳에서 빈둥거리면서, 커피나 팬케이크 따위만 입에 물고 하루 종일 노래나 듣고 책이나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 날이 갑자기 따듯해지면서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드네요.

묶인 몸은 그대로 두고, 고막과 세반고리관과 청신경만이라도 그런 휴가를 보내 봅시다. 고문이 될 지, 휴식이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Fire and Soul - Cranberries
http://youtu.be/r5sSEi3JovI



(이제 댁들도 늙었구랴. 특히 돌로레스 오라이어던 누님은...)


90년대 중반에 Dreams / Ode to my family / Linger 등으로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던 아이리쉬 밴드인 크랜베리스는 2003년에 해체하고 멤버들 각자 살 길 찾아 살다가, 2009년에 다시 모여 재결합하고 유럽 / 미국 투어를 시작, 2012년에는 새 앨범을 떡하고 내어 놓는데, 지금 소개하는 Fire and Soul이 그 앨범(Rose)에 수록된 곡입니다. 느낌은 1994년의 크랜베리스로 완전히 돌아온 느낌이네요. 오래된 연식이 묻어나는 외모와는 반대로, 돌로레스 누님의 목소리는 하나도 늙지 않았고 마이크 호건의 기타 리프 느낌도 친숙합니다. 몽환적인 가사나 의미없는 허밍같은 후렴구도 변하지 않았네요. (1996년 한국의 주주클럽이라는 밴드가 지금 말한 '의미없는 허밍같은 후렴구'와 기타 리프, 돌로레스의 창법을 그대로 따라한 적이 있었죠. 표절 시비 이후 지금은 뭐 하는 지 모르겠지만.)

듣다 보면... I'll take you to my grave. 널 영원히 기다릴거야, 널 내 무덤으로 데려갈꺼야...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게 연인의 속삭임인지, 지옥에서 기다리는 악마의 독백인지 헷갈립니다. 왠지 전체적인 느낌이나 돌로레스 아줌마의 목소리로 판단하자면 후자겠죠. 아마.


(세일러 마스의 "SOUL FIRE". 널 무덤까지 데려갈 영혼의 불꽃이지.)





Transcendence (Orchestral version) - Lindsay Stirling
http://youtu.be/DHdkRvEzW84



(배속에서 솟아오르는 열정은 꽉 조인 collar로 눌러 놓고...)


(아래의 내용은 많은 부분 위키피디아를 참조했습니다. 데뷔부터 챙겨본 친구는 아니라서요. http://en.wikipedia.org/wiki/Lindsay_Stirling)

2010년, 오디션 프로그램인 American's got talent에 자신을 힙합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소개하고나서, 덥스텝의 전자 바이올린으로 심사위원들을 감전시켜 버렸던 23살 먹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위키의 원문은 Stirling's performances were dubbed "electrifying" by the judges. 영어 맛을 살리기 어렵네요.) Final 8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Final 4에서 바이올린 연주에 춤까지 곁들였다가 망신만;;; 당하고 탈락했습니다...만, 인생지사 새옹지마, 그 무대에 감동을 받은 제작자와 만나 유툽에 Spontaneous Me 의 뮤직 비디오를 올리게 되는데, 요게 대박이 나버리죠.

이 후로도 자신의 스타일을 꾸준히 고집하면서 Dubstep / Hip hop / Electronic / Classic을 넘나들며 자기의 음악을 계속해 오고 있는데, 시장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네요.

사실, Electronic Violin이 예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 잘 아시는 Vanessa Mae는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에 태국 스키 대표선수로 출전했죠;;; 정말 대단합니다.- 이 친구처럼 Cross over / Collaboration을 잘 소화해 내는 친구는 드문 것 같네요. 소녀 감성의 '아직 이 세상은 아름다워' 삘의 뮤직 비디오는 또 나름 발랄하고 재밌구요. (이 친구 유툽 계정에 가보면 린제이가 직접 유저들에게 재미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곤 하는데, 질문 수준이 아주 여고생마냥 풋풋합니다.)

소개하는 곡은 Transcendence의 Classic version인데 제목처럼 '초월'... 한다기 보다는, 그냥 신나고 흥겹고 그렇습니다. Electronic version 보다는 이게 듣기도 쉽고, 봄에도 잘 어울릴 것 같구요. 뮤비도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인간들을 바이올린으로 구제(?)하는 뭐 그런 스토리인데, 나쁘진 않습니다.


(딱히 예쁘다고 할 수 없고, 절대 내 스따일은 아니지만, 뭐...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뭐 그런...)




Royals - LORDE

http://youtu.be/nlcIKh6sBtc



(마이클 잭슨 형님, 지하에서 돌아오신 줄...)


오십 여섯번째 그래미 시상식에서 가장 눈길은 끄는 무대는, (나에겐 당연히도) Daft Punk / Nile Rogers / Pharrell / Steve Wonder 의 콜라보 무대 였지만, 요 뉴질랜드 출신의 18살짜리 아가씨의 무대도 적잖이 충격적이었습니다. Best pop solo performance와 song of the year를 이 어린 아가씨가 받는 건 더 충격이었구요. (record of the year 와 Best pop vocal album에는 노미네이트만 되었죠.)

13살에 UMG (Universal)에 스카웃되어 길러졌다고 하는데,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중저음의 독특한 음색, 더욱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모, 총제작비가 과연 100만원은 넘을까 싶은 뮤직비디오(그냥 지 친구 하나 데려다 놓고 쭉 찍었습니다. 물론 조명, 시퀀스 이런 걸 보면 전문가의 손이 닿은 작품인건 맞고요.)를 보고 있자면, 정말 Major를 통해 데뷔한게 맞나 싶기도 하죠. 대형 기획사를 통해 나오는 우리 나라 아이돌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난 당신들 좋아하는 돈 뭐 이런 거는 됐고, 나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래.' 이런 뜻의 가사여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본명은 Ella Marija Lani Yelich-O'Connor인데, 어떻게 읽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ˈlɔrd/ 로 불려지는 이 친구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 집니다. 외모나 퍼포먼스가 이미 10년은 활동한 가수처럼 보이니, 향후 10년 동안은 주~욱 좋은 노래를 해 주길, 부디 와인집 누님이 겪었던 메가 히트 이후의 불행한 삶은 이 친구를 비켜가길 바래봅니다.



(저 올해 18살이예요. 당신이 믿던 말던.)




You must believe in spring - Eddie Higgins trio

http://youtu.be/sd7jpCiycrc



(마음에 쏙 드는 자켓 사진. 나도 죽기 전엔 언젠가 한 번 해 보리라.)

좀 전엔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젊은 친구였다면, 이번엔 작고하시 피아니스트, (고) 에디 히깅스 님입니다. 쓸쓸한 피아노 솔로 연주로 시작하다가, 중간 정도에서 갑자기 베이스와 드럼이 튀어 나와 쿵작쿵작으로 바뀌는 Club house jazz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고, 2000년대 초반에 일본 진출 하신 뒤에 인기가 worldwide에서 수직 상승하신 Eddie 할아버지를 딱히 좋아했던 건 더더욱 아니지만, 이 앨범 만큼은 자켓 커버 때문에라도 무척 좋아했었습죠. 그윽한 눈빛 너머로 담배불 키스를 나누는 세련된 남녀... 햇빛 좋은 라운지 카페나 담배연기 자욱한 프라이빗 클럽 바에서 저도 언제 한 번... 아, 전 안되겠군요.

자켓 앨범을 보다가, 이 할아버지 얼굴보면 좀 깹니다. 순딩이 훼이스에 연주만 참 잘하시게 생기셨거든요.


(센터에 서신 분이 Eddie 히깅스 옹. 거 참... 껍데기는 껍데기일 뿐.)

달빛 좋은 봄날에 경치 좋은 테라스에 앉아, 타들어가는 시가 끄트머리의 빨간 불을 보면서 같이 들으면 더 없이 좋은 음악 입니다. 앞에 있는 술은 위스키던, 맨하튼이던 에이비에이터든 상관 없구요. 맘에 드는 멋진 이성이 옆에 있다면 같이 분위기 타는데 더 없이 좋겠지만, 너희들 같은 솔로들은 그냥 휘둥그런 달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야외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계절이 왔으니 한 번 시도해 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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