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입구

간만에 놀러간 학교 앞은... 이미 예상했던 대로 내가 알고 있던 학교 앞은 아니었다. 지하철역은 기억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역의 계단은 기억보다 비좁아서 결코 쾌적하지 못했다.


역에서 지상으로 나오자 담배가 급 당긴다. 불을 붙이고 한숨을 후~~ 내쉬니, 하얀 연기 뒤로 못보던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세상에.. 아는 간판이라곤 아예 남아 있질 않고, 전부 새로운 풍경이다. 이래서야, 내가 다니던 학교의 앞이라고 할 수가 없다. 1~2년 전인가에 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걷고 싶은 거리"로 이름이 바뀐(너무 걷고 싶은 사람이 많다 보니 도대체 걸어 다닐 수가 없다.) 먹자 골목. 친구와 후배들과 3000원씩만 걷으면 저녁 겸 반주를 해결할 수 있었던 오돌뼈집과, 지저분한 벽을 가득 채운 한시(漢詩)중 몇 개의 뜻을 풀면 "아줌마 저 친구 자리 술값은 여기에..." 하고 구석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소리치고, "아줌마"란 소리가 반가운 주인 할머니는 "아이고 멋쟁이 나셨네."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나는 이제 갓 50을 넘겨 보이시는 아저씨에게 "어르신, 잘 마시겠습니다." 하고 할머니에게 "간/천엽은  서비스로 주실거죠?" 하던 실내포장마차는, 모두 그 층을 세어 보기도 귀찮을 정도로 높은 건물이 대신 자리 하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담배를 한 번 더 후~~ 뱉어냈는데, 어째 냄새가 좀 비렸다. 퉤.


선배를 만나고, 약속된 장소로 가는 길은 거의 모든 건물들이 자본의 축복으로, 크고 반짝이고 아름답고 무서운 것들로 변해 있었다. 또, 그 길을 예쁘고, 아름답고, 잘 생겼지만 모두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채워가고 있었다. 참, 이 나라 국민성이란... 옆에 있는 형이 혀를 찼다. 모두가 비슷하게 하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한가봐. 형, 옛날부터 그랬어요. 장스포츠 쌕 안 들고 다니던 사람 있었나요, 뭐... 짧아진 담배를 쭉 빨고, 꽁초는 쓰레기통에 비벼 껐다.


예전에 잘 가던 밥집, 술집은 찾아볼 수가 없어서... 그나마 사람이 적은 집을 찾아 들어갔다.
우리는 밥 2공기와 술 1병을 먹는 동안, 메가데쓰와 드림 씨어터와 테리 이글턴과 촘스키와 박민규와 하루끼와 차베스와 카스트로와 최철원과 최동원(한 명은 빠따로, 한 명은 공으로 유명하다.)과 김경문과 한대화와 최강희와 정조국과 북폐(FC서울)와 남폐(제주FC)인 "쌍폐"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와 90년대 말까지의 가요시장에 대해서 얘기 했다. 둘 다 충실한 기독교인일 때의 얘기가 나왔을 때는 서로 얼굴 보고 껄껄 웃었다. 우리나... 학교 앞이나... 그대로인 것은 없네요... 후~~ 그지?? ㅎ

...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왠지 모를 무거움에 서로가 말을 아꼈다. 형, 다른 후배들은 연락 되세요? 아니, 뭐 나도 사는게 이래서... 윤정이 결혼식 이후로는 본 적 없다. 그러시군요...
... .... .... ..... 조심히 가세요. 그래, 너도 잘 들어가라. 생일 축하하고요. 몇 시간 안 남았네요. ㅎ 그래. 담에 또 보자.



담에 또 봐야죠.

늦은 시간의 지하철은 텅 비어 있었고... 멍하니 창밖을 향해 뜨고 있던 눈을 감으니 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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