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erdeen Angus (2)



... 라가블린과 드람뷔의 향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강한 향이 나지만, 목넘김은 '너무'라고 할 정도로 부드럽다. 단맛과 쓴맛이 둘 다 강하지만 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혀 전체에 퍼지는 느낌이다. 혀끝의 느낌은 위스키인데 목 뒤로 넘어간 후 코로 넘어오는 향은 아까 바텐더가 말한 피트향과 허브향이 올라와서 묘한 느낌이다. 이런 술이 있었나??

- 이런 술이 있었나요? 이름이 뭐라구요?

- Aberdeen Angus 입니다. 맘에 드시나요?

- 오호... 이건 정말 맛나네요. 추운데 몸이 좀 풀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

-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느낌이 어떠신가요?

- 강한 것 같은데도 부드럽고... 달달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쌉사름(?) 하네요...

- 지금은 봄이지만 날씨는 겨울 날씨여서 더욱 잘 어울리는 술이죠. 여름에는 얼음을 한 조각만 넣어서 약간 차갑게 드시기도 하구요.


바텐더는 내가 술이 맘에 들어 한다는 게 영 좋은 모양인지 좀 전 보다  표정이 밝다. 설명하는 말의 속도도 조금은 빨라진 듯.


-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드람뷔라는 리큐르가 주된 베이스이긴 합니다만, 이 칵테일의 맛을 정하는 친구는 이 라가불린 이라는 놈입니다.



- 스코틀랜드의 아일라 섬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숙성되는 놈들 중에서 강한 피트향과 여운이 긴 피니쉬로 유명한 친구입니다. 12년이 보통인 다른 몰트 위스키 친구들과는 다르게 16년 숙성이 스탠다드 제품입니다. 물론 12년 숙성으로 나오는 친구도 있는데... Cask Strength로 나오고 있어서 일반에서 그닥 선호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독립된 Distillery에서 나오는 친구이니 21년, 25년, 30년 등등의 Distiller's Edition이 나오긴 합니다...



이 아저씨가 도대체 무슨 말씀을 지껄이는 지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만, 들어보니 뭐 좋은 술이겠지...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많이 앞서 나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술을 워낙 좋아해서요. 반 강제(?)로 주문 당하신 술의 이름부터 설명해 드리는 게 순서에 맞는 것인데 말이죠...

- 아까 말씀하시기로는 바텐더가 말이 많으면 술이 맛이 없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요...

- 그렇죠. 흠. 흠. 그런데 그 술은 워낙 맛이 좋아서 약간 맛이 떨어져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설명 드려도 될까요?


이런 썩개를 계속 듣느니 그냥 설명을 듣는게 낫겠다 싶다.  이 맛난 술이 어떤 놈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 Aberdeen Angus는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소고기의 상표 입니다. 술과 무슨 관계냐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로는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과 비교되시는  Michael Jackson 옹이 쓴 책에 이 술에 대한 recipe와 설명이 나온다고 하는데 영어가 짧은 저는 읽어 본 적이 없어서요. 하지만 Old fashioned recipe 중에 하나 인 것은 확실합니다.

- 마이클 잭슨은 빌리 진 이즈 낫 마이 선... 인데요...


나의 썩개는 그를 멈추지 못했다. 바텐더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조금씩 띄워가며 설명을 이어간다.


- 마이클 잭슨 옹은 얼마 전에 돌아 가셨으니 고인에 대한 농담은 자제 하겠습니다. 아, 가수인 마이클 잭슨도 죽었군요....

흣흠. Aberdeen과 Angus는 모두 Scotland의 지명입니다. Aberdeen은 스코틀랜드의 인구가 셋째로 많은 도시이고, Angus는 우리로 치면 경기도 쯤되는 지역 이름이니 두 이름을 병행하는 것은 어법 구조상 맞지 않죠. 작은 분류 + 대분류라는 어법일까 (예를 들면 포항시, 경상북도 하듯이 말이죠.)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Aberdeen이라는 도시가 Angus지역 안에 있느냐? 그건 또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Aberdeen이란 도시는 예전까지  Aberdeenshire라고 부르던 지역 안에 있었고, 이 지역과 Angus 지역은 맞닿아 있는데, 이 두 지역에서만 자라는 소가 뿔이 없고 색이 검거나 붉은 색이며 맛이 매우 좋아서, 소의 고기가 생산되는  두 지역을 묶어서 부를 때  Aberdeenshire and Angus로 부르던 것을, 좀 줄여서 Aberdeen Angus로 부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저의 주장이며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아까 하신 말씀 중 바텐더가 말이 많으면 술 맛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말 맞는 말씀이네요. 이 맛있는 술의 맛이 딱 절반 남았습니다.

- 맛이 다 떨어지기 전에 설명이 끝나야 할 텐데요. Aberdeen Angus 지역의 소 키우는 카우보이 들이 드람뷔와 꿀을 섞은 후에 위스키를 섞어서 먹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도 있는데, 확실한 것인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술의 이름과 이 술을 연관성을 찾는 것은 그냥 이 정도에서 포기 했습니다. 여기 저기 물어봐도 아시는 분들도 많이 안 계시구요.


고개를 떨군 바텐더의 표정이 약간 침울하던가 싶더니, 갑자기 눈이 빛나며 아까 설명하던 라가블린 병을 집어 든다.


- 하지만, 이름의 유래가 모호한 것과는 반대로, 술 맛 좀 아시는 바텐더와 손님들께서 모두 동의하시는 점은 바로, Aberdeen Angus라는 칵테일의 레시피에서 절대 다른 술로 대체될 수 없는 게 이 "라가블린"이라는 점이죠.

 원래 Aberdeen Angus의 레시피는 드람뷔+벌꿀+위스키+라임주스+레몬 혹은 라임 가니쉬 입니다. 여기서 위스키는 어떤 것을 써도 되긴 합니다만... 지금 드시는 그 맛을 내려면, 즉 드람뷔의 강한 맛을 뚫고 위스키 자신의 맛을 잃어 버리지 않으면서도, 또 반대로 자신의 맛으로 드람뷔의 맛을 가리지 않고 잘 살려 주려면 이 라가블린 만한 위스키가 없습니다.

- 너무 많은 말씀을 하셔서,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요... 이 술의 포인트는 이 라가블린이다? 맞나요?

- 네... 그렇게 보셔도 되겠네요. 앞서 말씀 드린 Whisky, Single Malt,  Islay, Cask Strength, Distiller 따위의 말들은 모르셔도 됩니다. 바라자면, 이러한 것들에 관심이 생기셔서 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게 된다면야 더 좋을 수 없겠지만요. 하지만 오늘은 여기가 포인트 입니다. 이 맛난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라가블린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죠.


바텐더는 잠깐 말을 끊으면서 라가블린 병을 타올로 한 번 닦았다. 그리곤 내 얼굴을 약간 부담스럽게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 바텐더 일을 하다보면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자리에 앉으시는 모습을 보면 직감적으로 손님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제 잘난 척을 하자면 저는 손님의 첫 모습을 보고 손님의 마음을 꽤 잘 맞추는 편이구요. 이 시간대에 식사도 안하시고, 넥타이를 메신 채 들어오시는 건 일상대로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긴 어렵죠. 게다가 손님의 표정과 어깨는 굳이 바텐더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지쳐 보이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신 분에게 바텐더가 권할 수 있는 첫 잔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래서 대접해 드린 것이 이 Aberdeen Angus 입니다.

- 제가 그렇게 보였군요...

- 네. 벌꿀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자양강장의 음식이어서 지친 몸에 활기를 줍니다. 적당한 당분이 혀끝에 닿으면 기분까지도 약간 좋아지고요. 날이 차니 따뜻한 술을 마시면 혈액 순환도 좋아져서 몸이 약간 훈훈해 집니다. 하지만...

- 하지만...?

- 제가 이 술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벌꿀이 들어갔거나 따뜻한 채로 서빙을 해야 하는 술이기 때문 만은 아닙니다. 손님은 몸보다는 마음이 훨씬 더 지쳐 보이셨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해 드려야 할 까 고민했는데 그 때 떠오른 것이 이 칵테일에 들어가는 라가블린 이었습니다.

손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지 말씀을 해 주시지 않아서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 낯설고 후진 바의 처음 보는 바텐더에게 손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 지 정도를 말씀해 주시지 않을 정도로 손님의 마음이 닫혀 계셔서 그랬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에게 저는, 손님께서는 하시는 일과 계시는 일터에서 매우 중요하신 분이고, 절대 대체될 수 없으실 뿐더러 주변의 사람들을 잘 이끌고 가시는 분이니 기운 내십시오 라고 직접 말로 표현하면서 위로를 드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슷한 마음을 담아 이 술을 대접해 드렸습니다..... 바텐더들은 그럴 때 말로 하기 어려운 표현을 술로 대신하길 좋아하거든요.

- 하아...


그런 심오한... 후후... 저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더라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 이거 한 잔 더 주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잔을 추천해 주실 게 있으신가요? 이 술도 참 좋지만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다른 잔도 기대가 되는데요...

- 네...... 추천해 드릴 술이 있긴 한데, 오늘은 그만 하시고 식사를 하러 가시는 편이 나으실 것 같습니다. 더구나 기분이 알딸딸해 지려면 일단 해가 져야 하는데, 아직은  좀 이르시기도 하구요... 사실 오늘 드신 그 술이 오늘 대접해 드릴 수 있는 끝판왕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오늘의 술이 있고, 내일엔 내일의 술이 있으니까요.

- 그럴까요? 좀 아쉽긴 하네요...

- 어떠셨습니까? 설명이 길었는데 술 맛이 조금은 남아 있죠?

- 네. 잘 들었습니다. 오늘 이 술을 먹기 전까지는 최악의 기분이었는데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좋군요. 좋은 술과 설명 감사합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 그럼요. 가급적 술에 대한 얘기였으면 좋겠습니다만...

- 술은 아니구요. 주인장께서 듣고 계시는 노래는 Mahler의 부활이 맞죠? 술에 대한 조예도 깊으신 것 같은데, 아... 직업으로 하시는 일에 조예라는 표현은 좀 그렇군요. 아무튼 음악도 좋고 술도 좋은데 간판이 좀 그렇네요. 역전앞이라니... 그러고 보니 역에서도 멀자나요.

- 아 예. 신경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전앞은... "경기의 역전을 눈 앞에 두고 있다."라는 뜻으로 쓴 겁니다. 저야 영어를 잘 못하지만, 영어를 잘 하시는 손님께 여쭤보니 Facing Turn-around라고 표현될 수 있다고 하시네요. 굳이 뜻에 대해 또 말씀드리자면... 길어질 것 같은데 최대한 짧게... 고지는 저 앞에 있는데 정말 힘이 떨어져서 한 발자국도 더 못 나갈 것 같을 때 누군가 "고지가 저기 있다"라고 소리쳐 주면 없던 힘이 날 때도 있더라구요. 삼국지에서도 조조가 목말라하는 병사들에게 "저 언덕을 넘으면 모과 나무가 있다."라는 말로 독려 했다는 얘기가 있자나요. 저희 Bar가 하루 동안 수고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손님들에게 "역전이 저 앞에 있으니 힘내세요."라고 외쳐 드렸으면 하는 소망인데... 너무 돌아 왔죠? 후후후...


바텐더의 목소리는 영어를 잘 모른다는 자기의 말과는 반대로 어딘가 먹물 맛이 나지만... 그래서 뭔가 내가 속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뭐 어떠랴.. 술이 맛나니 다 용서가 된다.


-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 가십시오.


Bar에서 나와 간판을 다시 한 번 봤다. 아무리 봐도 굴림체는 촌스럽지만, 왠지 아까와는 다르게 보인다. 들어올 때와 달라진 것은 간판만이 아니어서 차까지 돌아가는 발걸음도 많이 가벼워졌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시동을 켜는데, 아까 바텐더의 말이 생각이 난다.


내일엔 내일의 술이 있다...라...
내일엔 내일의 술...


한 번 기대해 볼까. 그게 "내일"일지 "내일의 술"일지는 모르겠지만.






** 후기

- 2편의 Aberdeen Angus의 image는 Mr.Simon Bar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 Lagavulin의 image는 투모로우스타티드 닷 컴이라는 site에서 따다 붙였습니다. 저작권의 문제가 될 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 선정 방식은 바텐더 만화를 한 번 따라해 봤습니다. 비슷한 부분을 느끼실 수도 아니실도 있겠습니다만, 술 하나를 주제로 이야기를 붙여내는 건 확실하게 따라했습니다. 어려운 작업을 몇 년간 해내신 두 분의 작가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몰트 위스키에 대한 소설을 다시 준비 중에 있는데... 몰트에 대해 거장이 되신 분들은 말년에 몰골이 거지꼴이 된다는 Bartender의 귀띰을 받고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검색해 보닌 짐 머레이, 마이클 잭슨, 데이비드 브룸이 전부 수염이 덥수룩하긴 합니다...ㅎㅎ 전 수염이 잘 나지 않는편이니...(적어도 그들의 현재 모습처럼 될 일은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써봐도 될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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