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1. 
2012년 6월에 다친 허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남은 2012년을 반병신 비슷하게 살아왔다.

2013년은 멀쩡한 성인으로 살고 싶어서,
회사 옆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1월 한 달을 다 보낸 오늘은,
쑤시는 팔 다리와 시도 때도 없이 내려오는 눈꺼풀을
정상인 허리를 향해 갈 때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서,
다가올 2월의 활기찬 허리만 생각하기로 했다.




2.
2012년 말엔, 나 외의 다른 병신 같은 놈이 존나 카리스마 있는 이상한 병신 같은 짓을 한 관계로,
그렇지 않아도 병맛인 회사 생활이 좀 더 상큼한 병맛이 되어 버렸다.
매일 출근하면 책상 뒷꼭지에서 희미하게 생선 썩은 냄새 같은 게 나는 기분이다.

이 드러운 기분에서
재활하기 위해
기타를 치고 싶은데

허리 재활 하느라 시간이 없다.

몸 재활을 위해 마음 재활을 잠시 미뤄야 하는게 슬플 따름.




3. 
지하철을 탔을 때 잠깐 유리창에 비춰진 내 얼굴을 보거나,
길 가다가 건물의 유리창에 드러난 내 전신을 볼 때,
아 썅, 진심으로 못생긴 얼굴에 겁나서 고개를 돌려 버릴 때가 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이 얼굴로 장가간 건, 제가 잘 났기 때문이겠지요.

마눌에게 물어보니, 결혼식 전에 엄마가 쟤 얼굴은 A/S 안된다고 못 박으셨다면서요.
아직 이혼 안 당한건 어머님의 혜안 때문이겠지요.




4. 
운동 끝나고 집에 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장모님이 끓여 놓고 가신 미역국이 한솥으로 있어서 룰루랄라 밥을 말아 먹었는데
내 혀가 고장났는지, 비주얼로 전혀 이상한 점이 없는 미역국의 그 맛이 참 신박하다.
40년 가까이 미역국을 먹어 왔지만 (이 문장만 따로 떼어 놓고 보니, 40년 가까이 어떤 시험에서 떨어져 온 것 같다.), 이런 상콤하기 이를 데 없어 당장 뱉어 버리고 싶은 맛은 경험하지 못했었다.

어찌된 일인지 마눌님께 여쭤보니,
장모님께서 미역국 간을 맞추실 때 국간장 대신, 보관하다가 썩었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식초로 만드실려고 재워둔 와인을 넣으셨다는.

원효대사는 자다가 목 말라서 시체의 썩은 물을 맛있게 먹었다는데,
3시간 운동 후 이 불타는 배고픔에 썩은 와인 넣은 미역국 따위야 못 먹겠냐만은...




못 먹겠더라.



원효대사 그 양반이 원래 좀비 혹은 네크로 멘서이거나 아니면 시체애호의 취미가 있거나 했겠지.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자다가 목 마르면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시고, 미역국엔 국간장으로 간을 해서 먹으면서 일체유심조 따위는 개나 줘버리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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